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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랑국, 그 뱃길을 찾아서(1)
    해양문학 2021-08-02 10:30:12
    탐라국은 고·양·부 삼을나가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하면서 탄생했다. 삼성신화 속 ‘벽랑국’의 궤적을 쫓아 그 명칭이 실재함을 밝혔던 채바다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이 ‘벽랑국’의 실체를 찾는 기획물 ‘벽랑국, 그 뱃길을 찾아서’를 모두 6회 연재한다. 채소장은 고대 문화이동의 통로인 뱃길 탐사에 관심을 두고 1996년부터 한·일간 제주전통배인 ‘떼배’를 만들어 고대뱃길탐사에 나선 바 있다(편집자 주). 탐라는 고·양·부 삼을나가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하면서 탐라국 시대를 열어갔다. 벽랑국 공주가 왔다는 제주 은평리 바다(사진=이다일) 오늘까지 세공주가 왔다는 벽랑국은 과연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안개에 가려진 채 그 궁금증만 더해 갔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한편으로 아예 바다 한 가운데 떠돌고 있는 섬이려니 하고 포기한 심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망국의 서러움으로 사랑하는 모국을 떠나 육지를 눈앞에 바라보고서도 상륙도 못하는 보트 피플 신세가 되고 말았을 운명에 처해 살아 온 것이 벽랑국 세 공주가 아닌가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세 공주가 왔을 것으로 판단되는 벽랑국을 찾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이름조차 바뀌고 말았다. 한 때 망국의 설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벽랑국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제일 작은 왕국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탐사장면(사진=채바다) 그 문헌과 기록들을 찾게 돼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주지’와는 다르게 ‘고려사 지리지’에는 일본국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필자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문은 하나씩 풀려 나갔다. 그것은 10여 년 넘는 한·일 고대 뱃길 탐험에서 얻은 결과물로 보인다. 우선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일본국은 아니라는 까닭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문제 접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필자가 그동안 조사 연구를 통해 얻은 내용들을 여기에 기술하고자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670년 문무(文武10년12월)에 보면 ‘倭國更號日本.自言近日所出以爲名’이란 기록이 있다. 이 말을 풀어 쓰면 왜나라가 국호를 바꿔 일본이라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이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이름을 지은 것이다. 다음에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에서도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련 기록은 “日本國者倭之別稱也 以其國在日處故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故改爲日本”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석하면 “일본국은 왜의 다른 명칭이다. 이는 나라가 해 뜨는 곳에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요.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라 함은 떳떳하지 못한 이름이어서 스스로 싫어하였으므로 그런 이유로 일본이란 이름을 고쳤던 것이다.”라는 뜻이다. 필자가 여기서 예문을 들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일본이라는 국호가 서기 670년에 등장한 사실이다. 이것은 탐라국 탄생 역사를 이 연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한 예를 들어 보자. 1907년에 출간된 일본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와세다대 교수)가 쓴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라는 책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한 1910년보다 3년 앞서 나온 일본에서는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 책으로 알려진 권위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제 4부로 나눠져 있는데 제3부 ‘국호편’에 ‘일본’이란 국호의 뿌리를 논술한 대목이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이란 국호는 한민족이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으나 일본 사람들이 아름답고 우리나라 이름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만고불변의 국호로 삼았다”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그 동안 아무런 반론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출판된 지 100년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 그 후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요미우리신문>에도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이 밖에도 반노부도모(伴 信友)·호시노히사시(星野恒)·기무라마사지(木村正辭) 등 여러 유명 고대 사학자들이 있다. 이밖에도 저명한 사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도 그의 저서 ‘일본상고사개요’에서 “일본의 국호는 한인들이 지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상 지적한 대로 고려사에 일본이라는 등장은 석연치 않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탐라국 탄생시조인 고량부의 가계보에서 밝히고 있듯이 최초로 이 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활을 쏘며 사냥한 동물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혈거생활을 하는 채집과 농경생활을 무대로 살아가는 시대이다. 고조선의 단군 탄생기원과 비슷한 연대로써 50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실들을 두고 ‘일본국’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주고씨연원’을 보면 BC. 53년 고후(高厚), 고청(高淸), 고계(高季) 삼형제가 신라에 입조하여 성주(星主), 왕자(王子), 도내(徒內) 작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에 일본열도에는 어떠한 국가 형태도 발달하고 있지도 않은 시대이다. 채바다(시인)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6) 호미와 삽
    해양문학 2021-05-24 07:40:24
    농기구(김충호 작)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밭농사 김매기 손길이 이으면서 겨우내 창고에 있던 농기구들도 제 할 일로 들뜨기 시작한다. 반농반어촌 들에서 주인장도, 삽과 호미도 자기 역할을 찾았으니 마냥 기쁘고 행복할 따름이다. 농부와 농기구가 납시니 들녘은 새 바람으로 역동적이다. 삽질마다 호미질마다 파릇파릇 샘솟는 농작물, 푸른 물소리, 푸른 하늘이 모두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코로나19로 웅크린 사람도 자연도 모두 허리 펴고 어깨 들썩이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은 시절이다. 글・그림: 김충호(서양화가. 한국미술협회 강진지부장) 김충호 화백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5) 강진역
    해양문학 2021-04-28 09:02:46
    '강진역'이라는 제목의 벽화(사진=김충호) 우리들은 매일 거리와 골목을 통해 소통한다. 골목길은 그 마을의 역사이고 문화유산이다. 과거와 현대사회를 잇는 실핏줄 같은 것이다. 도로, 담장, 대문, 화단, 주민쉼터 등 주거환경 개선 작업 중 하나인 골목길 벽화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소위 벽화 효과는 정서적, 미적 순화 이상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 잘 어촌의 거리와 골목길은 스토리가 아름답고 생동감 있게 되살아난다. 식당과 노점 등이 볼거리와 먹거리, 추억의 장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독창적 거리와 골목 콘텐츠 창출의 도화선이 된다. 관광객 유치와 주거환경 개선, 골목상권 회복으로 이어진다. 김충호(서영화가. 미협 강진지부장)
  • 문학이 숨 쉬는 박경리기념관 유채꽃 만발
    해양문학 2021-04-22 10:29:54
    문학이 살 숨 쉬는 통영시 산양읍 박경리기념관에 봄맞이 문학꽃길이 조성됐다. 이 꽃길은 지난해 10월 박경리기념관 후원에 유채꽃과 청보리 등 씨앗을 뿌렸고 이번 봄을 맞아 꽃이 핀 것이다. 박경리기념관 후원 유채 꽃길(사진=통영시) 산양읍은 박경리기념관 후원에 장기간 휴경 중인 대지 5412㎡(1636평)를 새로운 관광거리로 조성해, 여행객과 주민들에게 쾌적한 경관과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꽃길조성을 추진했다. 이에 지난 가을부터 유채꽃, 청보리 심을 구간을 정비했고, 씨앗뿌리기, 거름주기로 부지런히 개간하여 후원 일대에 꽃길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유채와 청보리길(사진=통영시) 이재현 산양읍주민자치위원장은 “유채와 청보리가 어우러진 꽃길이 산양읍의 숨은 명소로 부상해 코로나로 지쳐있는 주민과 산양읍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치유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 여름부터는 박경리 선생께서 생전에 선호한 해당화, 노란민들레, 엉겅퀴 등을 파종하여 가을 문학꽃길 조성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 [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군산 장자도 가는 길(4)
    해양문학 2021-04-14 09:45:29
    찜통더위가 모든 것들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꺾고 있는 이 여름에 이 대가족들의 만남이 문득 대단하게 느껴졌다. 넓은 들판에서 가족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함께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모두 정으로 똘똘 뭉쳐서 나이가 들수록 그리워지는 것이 아닐까? 애정 표현이 서툰 친정 큰오빠가 “이서방이 밴댕이 젓갈을 좋아해서……장날 사두었다.”하면서 내민 젓갈을 시댁 모임에 가져왔다. 나는 바닷가에 살아서 신선한 생선을 좋아한다. 일부러 썩혀서 냄새나는 젓갈을 왜 좋아할까? 장자도 해물칼국수(사진=섬문화연구소DB) 그런데 넓은 들판에 사는 시댁 가족들은 시어머님이 만들어주던 밴댕이의 맛이 별미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그 맛이 그립다며 완도 장날 사온 밴댕이 젓갈 하나를 뜨거운 밥 위에 올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3남 2녀가 모두 함께 그 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밴댕이 젓갈로 어머니의 그리움을,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음식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말에 기숙사에서 외박 나온 둘째아들을 보면 뭘 해줘야하나 고민이 많다. 둘째 아들은 뭘 주어도 별로 맛나게 먹지 않는다. 그런 아들에게 최소한의 엄마 사랑 표현으로 아들이 좋아는 메추라기알 조림과 단무지 무침, 유부 초밥을 해서 한 상 차렸더니 아들이 오랜만에 맛나게 밥을 먹었다며 좋아한다. 아들은 음식을 맛으로 먹었을까? 엄마의 사랑으로 먹었을까? 음식 솜씨 없는 엄마의 손맛을 맛나게 먹어주고 행복해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아직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구나 하고 위로 받는다. 음식에는 맛과 정, 그 사이 어디쯤에 그리움이 머물거라고 생각해본다. (장자도 편 끝) 박월선(동화작가)
  • [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군산 장자도 가는 길(3)
    해양문학 2021-03-12 08:45:48
    바다가 가끔 그리운 것처럼 바지락 칼국수도 비오는 날은 더 그립고 생각난다. 음식을 맛나게 먹는 것도 좋지만 그 음식과 함께 했던 장소, 시간, 사람들이 함께 추억된다. 지금은 저 세상으로 가신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나는 시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을 좋아했다. 시어머님은 음식을 먹기보다 만들어서 나눠주는 일을 더 좋아했다. 처음에는 자꾸 먹을 것을 만들어 놓았으니 먹으러 와라! 가져가라! 권하는 행동이 부담스러웠지만 시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음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이 그립고 그 정이 그리워졌다. 지두리 해변 바지락(사진=섬문화연구소DB) 시어머님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나게 먹으면 잘 먹어서 예쁘다! 라고 하시며 남은 음식까지 싸주셨던 시어머님의 음식사랑. 그분과 함께 했던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면 그분이 만들어준 음식들까지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휴가철이 되면 시댁 3남2녀 가족들이 모인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 20명 정도 되는 대가족들이 모여서 먹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용히 휴가를 즐기고 싶은 나는 ‘이게 무슨 휴가야?’ 하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시댁가족들을 관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꼬나봤다. 하다하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안계시니 시누들이 와서 며느리들을 괴럽혀! 뭐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시댁 큰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은 누나들이 해주는 반찬이며 음식들을 맛나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어미새가 아기새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장면과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누나들이라고 이 여름이 덥지 않았겠는가. 누나들이라고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 누나들은 맛나게 엄마의 손맛을 느껴보고 싶은 동생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전수 받은 음식 솜씨로 동생들에게 어머니의 그리움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계속) 박월선(동화작가)
  • [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군산 장자도 가는 길(2)
    해양문학 2021-01-29 09:13:52
    전망 좋은 위치마다 펜션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저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얼마나 이 바다가 오염될까 염려되었다. 아직은 깨끗한 이 섬들이 편리한 도로와 다리가 연결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은 외로움은 조금 덜하겠지. 그러나 섬은 점점 병들어가겠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장자도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오랫동안 시댁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바지락 칼국수가 그리웠다. 장자도 해변을 돌다가 맛집을 찾지 못하고 옛날 맛집, 변산 바지락칼국수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15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바지락칼국수를 팔고 있다는 주인장을 만났다. “장자도에 사람이 많은데 여기는 한산하네요.”라고 말하자, 주인장이 한숨을 쉬며 옆 자리에 앉았다. “그렁게, 장자도로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고 변산 해변만 돌다가 가버리니, 칼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줄었당게.” 그리곤 휙휙 식당을 지나는 차들을 야속하게 바라본다. 새만금방조대가 열리기 전에는 변산에 사람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도로가 발달하여 모두 군산으로, 장자도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변산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이다. (계속) 박월선(동화작가)
  • [화제의 시집] 영랑의 고향 강진여류시인 향토적 남도 노래하다
    해양문학 2021-01-20 12:14:05
    이수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울음 단추」가 고요아침에서 출간했다. 52편의 풋풋한 농어촌 소재를 중심으로 작품을 엮어낸 이 시집은 어머니와 자식을 둔 인생 고갯마루에 선 시인이 뒤안길과 이녁의 쓰디쓴 삶의 흔적들이 눈발처럼 사라진 여백의 공간에서 자유과 허무 혹은 외로움의 체험기를 진솔하게 그려낸 시편들이다. 어릴 적 긴긴 밤 방 윗목에서 석화 까고 바지락 까는 우리 엄마 석화 바지락 까는 소리 온 식구의 자장가였지 대덕장 칠량장 마량장 강진읍장에서 그 갯것, 내다 팔아 우리들 용돈과 제끼장 사주고 더 모아 공납금 주었지 7남매 새끼들이 돈 주라고 보채면 조세 호멩이 들고 거침없이 뻘밭으로 달려가신 울 엄마 85세 세월 나이 잊고 바다 나가는 일 아직 남았네 이제는 눈에 삼삼한 손자 녀석들 촐랑촐랑 밟혀서일까 나는 오늘 그 석화 편하게 앉아서 먹고 또 잠이 오네 - ‘철없는 잠’ 전문 이수희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울음 단추' 이 시는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시공간이 파노마라처럼 스치는 한 편의 액자그림이다. 엄마가 ‘석화 바지락 까는 소리 온 식구의 자장가였’다. 아니, 자식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도 엄마는 식솔들을 위해 밤새 조세(굴 까는 어구)를 찍고 하얀 굴 알맹이를 꺼내 모았다. 그것을 장에 내다 팔아 ‘7남매 새끼들’ “용돈과 제끼장(공책) 사주고/더 모아 공납금”을 마련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찬바람 쌩쌩 부는 날도 엄마는 “거침없이 뻘밭으로 달려”갔다. 어느덧 85세이지만 “나이 잊고/바다 나가는 일 아직 남았네/이제는 눈에 삼삼한 손자 녀석들” 때문이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7남매를 키웠고 잘 자라줘 고마울 뿐이다. 자꾸 못해 준 부분만 기억나는 울 엄마는 푸른 물결처럼 촐랑촐랑한 손주들이 또 하나의 희망이고 기쁨이다. 그러니 더더욱 바다로 나가고 싶다. 이제 엄마가 갯가로 나가는 일은 또 하나의 행복을 만드는 과정이다. 열매를 따로 가는 길이다. 그 시절보다야 팍, 줄어든 갯것들. 허구한날 갯벌체험이니 뭐니 바다를 긁어가는 도회지 사람들에게도 늘 마음을 열어준 바다처럼, 마르지 않은 끝끝한 갯물 같은 모성애. 그렇게 자식농사 잘 지은 울 엄마기에 시인은 석화를 달게 먹고 마음 편히 잠잘 수 있음이라. “냄새나는 은행 알 줍는다/남새난다고/더럽다고/버린 것들 많았는데//시간이라는 것/일이라는 것/몇 시/몇 분/몇 초를 담는/하루 자루//(중략)/가을을 줍는다”(‘가을을 줍는다’ 중에서) 이번 시집은 전반적으로 회한과 눈물이 스며있다. 글의 진정성을 살려준 대목이다. 솔직담백한 서사가 젖어든 탓이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매일 한 자, 한 페이지씩 온몸으로 기록해 나간다. 시인은 시, 분, 초를 다투며 책갈피를 넘긴다. 그러면서 뒤안길을 짚어가는 여백의 삶을 놓지 않았다. 꽃을 기르면서, 꽃차를 다스리면서, 나를 다스리면서, 꽃들의 잉태 그리고 동토를 뚫고 어깨 쑥쑥 밀며 나오는 몸부림의 순간들을 배려하고 기억한다. 이런 시인만의 체험이 잔잔하게 녹아들었다. 자연친화적인 정서와 목가적 문맥 속에 눈물과 회한이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른다. 진한 눈물은 갯물이 되고, 석화를 피어내고, 풍요롭고 행복한 바다를 열어준다. 희망과 행복으로 이어져서 글의 생명력도 빛났다. 문학평론에서 이런 방식의 시 정신을 일러 부활, 윤회사상, 연기망 정서가 배였다고 표현한다. 모든 삶은 우주의 순환, 삼라만상과 연결된 것으로 바라보는 문학정신이다. 시인은 문학과 삶의 성숙기에서 그렇게 고향 무대에서 세상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태어난 강진이라는 시공간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번 시집을 지극히 관념적, 추상적, 편린의 언어분석으로 단편적으로 접근할 우려가 있다. 체험이 생략되고 환경이 도외시 된 도회지 인문학적 정서로 농어촌과 예술 공간이 어우러진 남도정서를 해독하기 쉽지 않을 터. “달빛 받아 빛나는 정상/어찌 말하는 입 하나 가지지 못했단 말인가//(중략)//산 비릿내 왈칵 쏟아내는 새벽이면/매운 바람 쥐어짜며/오로지 돌이 되어야 하는 것/어찌 바위라고 변명만 하리오”(‘월출산’ 중에서) 홍매화(서성강 화백) 월출산은 행정구역으로 영암군에 속하지만 강진군 벌판에서 바라보면 그 자태가 매우 선명하게 다가선다. 특히 정상 돌부리와 능선이 백설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절경이다. 돌산으로 유명한 이 산에는 야생 들국화가 군락지가 있고 안개 바람이 나부끼면 그 신비로움이 더해진다. 한 폭의 수묵화다. 시인은 이 바위산을 통해 “오로지 돌이 되어야 하는 것/어찌 바위라고 변명만 하리오”라고 묻는다. 살다보면 안다. 가장 깊은 감정은 침묵 속에 있다는. 때를 얻은 침묵은 지혜이며 그것은 어떤 웅변보다도 낫다는 사실을. 시인은 그렇게 월출산 바위침묵을 통해 이녁을 반추했다. 시인이 바위산을 바라보며 하는 말을 ‘홍매화’를 통해서도 노래했다. “손 곱은 눈(雪)/툭툭/서로 파고드는 날일 때//중략)//숨길 수 없는 꽃/한 송이/가슴”(‘홍매화’ 중에서). 홍매화는 쓰러지기 직전의 고목에서도 붉은 꽃을 피워낼 정도로 생명력을 자랑한다. 시린 눈 속에서 붉은 꽃을 피어내기 위해 ‘일어나고’, ‘설레이고’, 마침내 ‘한 송이/가슴’을 열었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려준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 말이다. 그런 홍매화와 시인의 모습을 오버랩 된다. 내재율과 외재율 사이 문턱 없는 삶 참 힘들어라 안과 밖 - ‘내재율과 외재율 사이’ 전문 '울음 단추' 시집 표지 앞서 인용한 작품의 흐름, 그 은유의 속울음, 침묵 등을 이 시가 함축한 셈이다. 시인의 고뇌와 철학, 그 일면을 고백했다. 정진하는 스님의 고뇌의 경계가 ‘산문 안과 밖’이라면 시인에게는 ‘내재율과 외재율 사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딸로, 어머니, 아내, 시인으로, 경영자로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만나는 풍경 속의 내가 나에게 던지는 화두다. ‘문턱 없는 삶’, 누구나 ‘참 힘들’다. 경계 없는 삶을 위해 교감과 소통이 필요하고 절제와 침묵이 필요하다. 그러나 ‘참 힘들’다. 세상은 기표(상징)와 기의(의미)로 이뤄졌다. 붉은 신호등(기표) 앞에서 멈추고(기의) 푸른 신호등 앞에서 걷는다. 우리는 시 한 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기표와 기의를 해독할 수 있다. 나와 너, 우리의 거리와 사상철학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다.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꿈꾸는 격렬비열도/박상건
    해양문학 2020-11-17 17:29:23
    <詩境의 아침> 꿈꾸는 격렬비열도/박상건 망망대해 그 너머/ 연사흘 흰 거품 물고 칠천만 년 꾹꾹 눌러 둔 고독이// 마침내 폭발하더니만, 깊고 깊어 푸른 그 그리움 더 어쩌지 못하고 파도소리 뜨겁게 퍼 올려/ 등대 불빛을 밝히는 서해 끝 섬// 온몸 뒤틀며 태어난 기억/ 파도소리 홰칠 때마다 귓전에 여전한데 두 눈 껌벅 껌벅/ 황소처럼 드러누워/ 또 무슨 꿈을 꾸는가// 대륙을 휘달리던 바람 소리를 키질하듯 산둥반도로 가던 장보고의 박동 소리를 풀무질하듯 독수리의 날개 짓으로 이 바다를 휘몰이 하는 해안선 주상절리로 아로새기고/ 틈틈이 해국을 피워 흔들면서 다시 비상을 꿈꾸는 섬// 멀리서 바라보면/ 유채꽃 원추리로 노랗게 출렁이고 등대지기 거닐던 동백 후박나무 밀사초 섶길 위로 포물선 그리며 푸른 바다에 수를 놓는/ 새들도 쉬어가는 삼형제의 섬 격렬비열도- 박상건, ‘꿈꾸는 격렬비열도’ 해식애 절벽 위에서 섬으루 촬영 중인 박상건 시인(섬문화연구소DB)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가 보고 싶은 섬이 있다. 2015년 8월 31일 EBS에서 <한국기행>프로에 방영했으니 꼭 5년이 지난 셈이다. 25여 년 간 우리나라 섬을 찾아서 그들의 이름을 찾아 주고 그 존재를 알려주는 박상건(섬문화연구소장)시인의 노력이 있어 섬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이름, 격렬비열도. 독도가 우리나라 동해의 끝이라면 격렬비열도는 서해의 마지막 끝 섬 즉 최서단에 위치한 섬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섬이면서 서해에서 가장 맑은 바다청정해역을 보유한 섬이고, 칠천만 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높였던 것은 매우 가기 힘든 섬이지만 갈 수만 있다면 보물을 품고 있는 섬이라는 점이었다. ‘풍화 열에 의해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특이한 섬’이며 파랑에 의한 침식으로 해식 절벽(해식애)이 아슬하고,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해식동굴이 비밀스럽다. 파식대 위에 작은 바위섬인 시 스택(sea stack)이 멋지다면 주상절리비경과 기암괴석이 신비롭다. 야생 동식물들과 괭이 갈매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섬,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군락지가 밀림의 터널을 이루고 있는 섬. 비단벌레가 선택한 나무- 팽나무가 많은 섬, 귀한 후박나무가 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갯메꽃, 갯장구채, 갯까치수영, 해국이 활짝 피는 섬이니 어찌 가보고 싶지 않을까. 거친 파도 헤치고 가서 그 내면의 소리, 듣고 싶어진다. 푸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파도 소리로 퍼 올리며 비상을 꿈꾸는 섬, 격렬비열도. 너는 황소처럼 순한 눈망울을 가졌지. 독수리의 강인한 날갯짓으로 바다를 휘몰이 할 줄도 알지. 새들도 쉬어 가게 하는 너그러운 품성도 지녔어. 어쩌면……고독의 망망대해를 등대불빛으로 밝혀주기 까지 하는구나. <수필가 박모니카> 필자 박모니카 * <경상매일신문> 2020년 08월 30일자 기사 재수록
  • [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군산 장자도 가는 길(1)
    해양문학 2020-10-19 10:20:00
    최근 장자도로 가는 도로가 열렸다. 군산 비응도 입구 수산도매점은 한산했다. 새만금 방조제가 뚫리고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을 기대했다. 수산도매점에도 사람들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가 분위기는 한적하기만 하다. 바닷가 바지락(사진=섬문화연구소DB) 새만금방조제를 지나서 야미도, 몽돌해변, 신시도, 고군산대교를 지나서 무녀도를 달렸다. 그 동안 바다에 둘러싸여 외롭게 견뎌냈을 시간들이 느껴졌다. 무녀도에는 마을 공동운영체 캠핑장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캠핑을 하면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라 생각된다. 선유대교를 지나서 해변을 걸었다. 해수욕장을 개장했는데 아직도 공사중 이다. 조금 서둘렀다면 좋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섬 주변을 돌 수 있게 도로를 넓혔고 주변에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무엇을 먹어 볼 까 식당 메뉴를 훑어본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서인지 배에서 꼬르륵 신호를 보냈다. 이곳저곳 식당을 기웃거렸다. 바지락칼국수 판매한다는 현수막 안내가 보여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이 들어서는 시간이라서 바지락칼국수가 모두 동났다고 했다. 거짓말! 이라는 직감이 왔다. 손이 많이 가는 칼국수 메뉴를 주문 받지 않으려는 속셈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메뉴에 끌림이 없었다. 거기서부터 식욕이 사라져버렸다. 식당을 나왔다. (계속) 박월선(동화작가)
  • [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비응도, 해당화 지다(5편)
    해양문학 2020-10-11 09:02:30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가자 방안에 덩그러니 보따리만 남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속에는 커다란 수건이 돌돌돌 말아져 있었다. 수건을 풀자 또르르 또 하나의 수건이 구르며 방바닥에 펴졌다. 그러더니 그 위에 아기저고리가 있었다. “어! 이게 뭐야?” 그때 아빠가 내 방문을 열었다. “배냇저고리구나. 아기 옷이지.” 해당화(사진=섬문화연구소DB) 아빠는 배냇저고리를 들었다. 그런데 배냇저고리 속에 있는 것이 방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 손갈퀴네!” 내가 작은 손갈퀴를 들자 아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그, 이게 보물이라고?” 몹시 실망스런 표정으로 나는 갈퀴를 들었다. 아빠를 보자, 무척 괴로워 보였다. 부엌으로 간 아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으흐흐흐." 아빠는 자꾸자꾸 헛웃음을 쳤다. 웃음소리는 눈물을 머금고 거실 가득 떠다녔다. 그러더니 먼지처럼 구석으로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아빠, 왜 그래. 괜찮아?” “동이야. 이것이 무엇인지 아니?” “갈퀴! 나도 알아. 할머니가 조개 캐는 거잖아.” “그래, 조개 캐는 거지. 이 지겨운 갈퀴를 왜?” 아빠는“왜?”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베란다로 나가더니 비응도 쪽을 바라봤다. 우리 할머니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이 한창인 비응도에 산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다. 섬 뒤로는 군산에 있는 은파 유원지가 보이고, 섬 앞은 망망대해 바다가 있다. 여름마다 우리 가족은 비응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곳에는 썰물이 되면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맨발로 갯벌 위를 걷는 감촉은 너무 보드랍고 좋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새만금 방조제 사업 때문에 비응도가 무너지고 있다. 외부 사람들은 나라에서 보조금을 받으니, 이 섬을 벗어 날 좋은 기회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아닌 것 같다. 비응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할머니의 마지막 남아 있는 힘도 함께 사라진 것 같다. 할머니는 비응도에서 백합조개를 캐서 아빠를 대학까지 보냈다고 늘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비응도로 열세 살에 시집와서 칠십 삼세까지 할머니는 바다와 함께 산 것이다. 바다가 방조제로 막히고 지금은 새로운 관광단지가 세워지고 있다. 이제는 할머니 기억 속에 박제되어 버린 비응도와 작은 손갈퀴만이 웃고 있었다. 갈퀴를 보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 빨리 할머니한테 가자!” 처음처럼 갈퀴를 보자기에 묶고 아빠의 팔을 끌었다. 아빠의 우울한 얼굴이 불빛 아래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던 엄마가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할머니, 보따리 두고 가면 어떻게 해?” 보따리를 할머니 품속에 넣어 주었다. 링거 바늘이 꽃힌 팔이 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실눈을 뜨더니 초승달처럼 웃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끌어다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할머니 얼굴에 핀 검버섯이 뿌리 채 뽑혀 말라가던 비응도의 해당화 같았다. (비응도편 마지막회) 박월선(동화작가)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4) 어부의 힘찬 항해
    해양문학 2020-10-08 10:39:28
    어부의 힘찬 항해 하루 두 번씩 물길이 바뀌는 바다. 그 바다를 터전으로 어촌의 어부들은 생계를 이어간다. 때로는 안개가 자욱해 바다로 가는 길이 막히고 때로는 풍랑주의보가 내려 삶의 길이 막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을 잘 버무리면서 사는 길, 그것이 인생길이다. 바다는 하루에 두 번씩 그렇게 두 가지의 길을 보여주면서 어부와 동행한다. 마침내 물길이 열리고 어부는 힘차게 항해를 한다. 글・그림: 김충호(서양화가. 한국미술협회 강진지부장) 김충호(서양화가)
  • [유배지 섬을 찾아서] 최익현, 정약전의 유배지 흑산도
    해양문학 2020-09-25 08:58:07
    목포항을 떠난 여객선이 다섯시간 남짓 달려와 머무는 곳. 배도 숨이 가빠 헐떡거리고, 배에 탄 사람들도 모두 기진맥진한 모습들이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흑산도. 목포에서 100여 킬로미터 쯤 떨어진 서남해의 외딴섬이다. 지금은 쾌속정으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120여 년 전 유배객 면암 최익현(1833 ~ 1906 勉菴 崔益鉉)은 물을 떠난지 꼭 7일만에 이 섬에 당도했다. 돛을 달고, 바람의 힘으로 파도와 싸워가며 이 섬에 닿았을 것이다. 이 섬은 또 200여 년 전 손암 정약전(1758 ~ 1816ㆍ 정약용의 형)이 16년의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약전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수산생물을 조사・기록한 ‘자산어보’를 남겼다. 흑산도 상라봉(사진=섬문화연구소DB) 면암 최익현. 구한말의 유학자이자, 유림을 대표해서 민중을 이끈 항일구국 대열의 거목이다. 그가 어떻게 해서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이 머나먼 섬 흑산도에 귀양을 오게 됐는가. 1876년 1월 24일,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엎드려 척화의 상소를 올린다. “전하. 소신의 상소가 부당하다면 이 도끼로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최익현은 이 무렵 일본의 강박에 못 이겨 한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를 체결하려는 움직임에 분연히 일어나, 죽기를 각오하고 척화(斥和)상소를 올린 것이다. 최익현은 이미 이때 유학자로서의 특성을 강하게 지니면서도 문호개방에 따른 외세의 침입과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을 처음으로 통찰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결국 최익현의 상소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체포돼 국문을 받았으며, 1월 27일 전라도 나주목 흑산도를 위리안치의 명을 받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목숨을 걸고 반대하던 저 한일수호조규가 체결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는 2월 9일 유배길에 올라 다경진(多瓊津 ㆍ 지금의 신안군의 한 포구)을 떠난지 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적소인 흑산도 진촌(지금의 흑산도 진리)에 닿았다. 최익현은 이곳에서의 유배생활 4년 만에 방환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분기, 의병을 일으켰다. 흑산도 예리항(사진=섬문화연구소DB) 그는 각지에서 항전을 계속하다 전북 순창에서 일경에 체포, 일본 땅 대마도로 끌려갔다. 대마도를 가는 길에 양식과 장작, 물을 가지고 갔으며, 이것들이 동이 나자 “내 늙은 몸으로 어이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겠느냐. 너희나 살아 돌아가 나라를 구하라” 고 부하들에게 말한 뒤 식음을 전폐, 운명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최익현은 벼슬길에 오른 뒤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이조정랑, 호조참판 등을 역임했으며, 첫 제주유배에 이어 두 번째로 흑산도 유배를 당했었다. 옛 면암의 적소였던 진촌마을은 여객선의 닿는 예리항에서 북쪽으로 2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다와 면한 언덕에 자리잡은 마을, 옹기종기 집들 사이로 백년도 훨씬 더 된 초가집 3채가 나란히 서있다. 흑산면 진리 5백 37번지. 쓰러질 듯한 초가삼간이 곧 면암이 거처했다는 초막이다. 적소 뒤편에 면암이 이름지었다는 의두석(椅斗石) 바위가 있다. 돌이 편편해 면암이 가끔 올라가 앉거나 누워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는 바위다. 주위에는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다. 예리항에서 조그마한 통통배를 빌려 타고 우측으로 흑산도 주위를 한 시간쯤 돌아가면 흑산면 천촌리에 닿는다. 면암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고, 비석 뒤 바위에 면암의 육필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흑산도 사람들은 이 마을을 ‘예티미’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유허비는 1958년 흑산면 유지들이 주축이 돼 세웠으며, 비석 뒤 지장암 바위에는 ‘指掌嵒’ 세 글자위에 ‘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여덟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면암이 그의 유배가 풀리던 해인 1878년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 들렀다가 쓴 것인데, 각자는 제자 박양희(朴良喜)가 한 것이다. ‘기자강산’ 이란 기자가 세운 나라, ‘홍무’란 명나라 태조의 연호이다. 면암은 흑산도 유배 중 서당을 열어 젊은이들의 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아울러 섬 주민들의 인지계발과 폐습타파에도 힘을 기울여, 흑산도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었다. 지금도 이 섬의 노인들은 흑산도가 딴 섬에 비해 미신 폐습 등이 거의 없고, 주민들의 교육열이 유독 높은 것도 모두 면암선생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부 시인(사진=섬문화연구소DB) ※ 이 글은 고 이성부 시인이 생전에 집필한 원고다. 이성부 시인은 1942년 광주에서 출생했다. 고교 때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됐고 대학생 때 <현대문학> 재등단했고 제대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다. <샘이깊은물> 편집주간, <일간스포츠> 문화부장을 지냈으며 섬문화연구소 상임고문을 맡았다. 평소 산을 사랑하며 山시인으로 유명했던 시인은 "섬도 물에 뜬 산"이라면서 남다른 섬사랑을 보였다. 섬문화연구소 답사여행 때 집필한 시인의 육필 원고를 정리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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